어떤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누군가 비트코인과 거의 똑같으면서 더 나은 것을 만든다면 비트코인이 대체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요?"
더 나은 비트코인이 나오면 어쩌죠?
만약 당신이 비트코인과 거의 똑같은 것을 만든다고 해봅시다. 총 발행량은 2100만개, 블록시간은 10분, 블록크기는 1MB입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성공적으로 비트코인을 복제했습니다! 이것을 편의상 $FBTC라고 부르겠습니다. (fake BTC) 자, 이제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쓰도록 해봅시다. 당신이 혼자 쓰는 화폐는 전혀 의미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 가치도 없을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FBTC 생태계 참여자를 전세계적으로 모아야합니다. 이미 여기서부터 비트코인을 넘어설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이는군요.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서 어떤식으로든 일군의 사람들을 모으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우선 당신이 모은 사람들 가운데는 $FBTC의 규칙을 수호하기 위해 자진해서 노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 참고로 당신이 혼자 노드를 여러개 돌리는 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노드들은 당신의 의사에 따르는 한 표에 불과하니까요. $FBTC의 규칙에 공감하면서도 지정학적으로 분리된,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모을수록 좋습니다. 특정 국가가 정치적 이유로 $FBTC를 금지해도 네트워크가 유지되어야 하니까요.
물론 당신은 아마 이 홍보 활동을 익명으로 수행하고 싶을 것입니다. 나중에 $FBTC가 성공했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싶지는 않을테니까요. 로스 울브리히트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아직도 사토시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아실거에요. 음... 홍보하려면 아무래도 얼굴을 드러내고 코인 사장님 노릇을 하는게 유리해보이는데 익명으로 하려면 쉽지 않겠네요.
그럼 채굴자들을 모으는 문제는 어떨까요? $FBTC가 아직 시장가치를 형성하기 전이라 모으는게 거의 불가능해보이는데, 손해를 보면서 채굴을 하려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FBTC의 미래 가치에 베팅하며 자진해서 채굴하겠다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고 또 가정해보겠습니다.
성공적인 $FBTC 출범을 축하합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네트워크가 돌아가면서 $FBTC는 가격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 진짜 비트코인인 $BTC를 채굴중이던 업체들 중 일부가 $FBTC에 대한 ASIC을 새로 개발합니다. 그런데 일반 채굴자들에 비해 이 전문 채굴업체들의 해시파워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FBTC 채굴은 중앙화됩니다. 네트워크상의 대부분의 블록이 이들에 의해 채굴되기 때문에 탈중앙화는 훼손되고 검열저항성을 잃으며 사실상 일반 은행이 되어버립니다. 이 단계에서 $FBTC 커뮤니티는 이 강력한 채굴자들이 알아서 해시레이트를 줄여주기를 기대하든지, 아니면 이들의 ASIC을 무력화하는 하드포크를 강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채굴이라는 업종은 그 특성상 채굴로 얻는 순수익이 0에 근접할때까지도 채굴을 할 인센티브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ASIC까지 개발한 업체가 해당 체인에 최대한의 해시파워를 부여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강력한 채굴자가 일시적으로는 해시파워를 줄이더라도 계속 낮게 유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ASIC을 무력화하는 하드포크를 하는 쪽을 택한다면 이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아니므로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딜레마처음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수많은 알트코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알트코인들이 '비트코인을 보완한다', '비트코인의 단점을 제거했다', '더 기술이 뛰어나다'라고 주장하며 나타났지만, 비트코인은 2009년 출범 이래로 지금까지 단 1초도 시가총액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비트코인의 엄청난 네트워크 효과는 다른 어떤 알트코인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트코인이 단지 '선점효과만을 가진 구식 코인'에 지나지 않았다면, 비트코인은 그런 네트워크 효과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진작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반면, 불과 몇 년 전 coinmarketcap.com의 첫 페이지에 존재했던 알트코인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교체되었는지는 아마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의 성공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사토시는 그의 비트코인 백서에서 언급한 인물들이 그동안 착실히 쌓아온 암호학/컴퓨터공학의 정수들을 집대성해서 필수불가결한 것만 남겨 아름답고 간결한 설계를 했습니다. 정말 인류의 다음 세대 화폐가 되기에 딱 필요한 것만 남겨두었는데, 이를테면 반복문이 없는 튜링 불완전한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하고, 계정 모델이 아닌 UTXO 모델을 선택했으며, 이더리움처럼 현실 세계의 문제를 서술하는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라클 문제: 스마트 컨트랙트는 스마트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의 프로토콜에 변경을 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할 때, 비트코인의 첫 버전(v0.1)이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코어 프로토콜이 완벽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당연히 라이트코인이나 도지코인, 비트코인캐시와 같은 단순 포크들에는 이런 선견지명은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또한 이더리움같은 알트코인들이 "개선"을 위해 얼마나 끝없이 하드포크를 하는지를 볼 때, 처음부터 완성된 핵심 프로토콜을 지녔던 비트코인의 독보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비트코인의 특성상, 0.1 버전이 릴리즈될 때부터 핵심 디자인은 영구적이어야 했습니다." - 사토시 나카모토)
한편 비트코인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품화폐로서 논란 없이 채택될 수 있는 완벽한 공정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어렵게 만들 비트코인의 엄청난 잠재성을 빠르게 알아봤다면 성장하지 못하게 막을 시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비트코인은 그런 임계점도 넘어섰습니다. 명실상부 국경을 초월하는 검열저항성을 지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엄청난 유동성의 디지털 화폐가 되었습니다.
버금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비트코인이 재현될 것 같다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