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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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는 욕심쟁이 채굴자였을까요?

사토시는 Metzdowd라는 암호학 커뮤니티에서 사이퍼펑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8년 10월 31일, 그 커뮤니티에서 비트코인 백서를 공개합니다. 몇 달 후, 2009년 1월 3일, 타임즈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 금융을 앞둔 재무장관"
그리고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시작을 알리는 0번 블록, 바로 그 전설적인 "제네시스 블록"에 위 문구를 넣기로 결정합니다.
제네시스 블록에 새겨진 타임즈의 표제 기사 문구
이 블록은 하드코딩되어있으며, 사토시는 공정하게도 제네시스 블록의 보상인 50 BTC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코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제네시스 블록(0번 블록)이 채굴됩니다. 이때는 사토시 이외에는 아무도 채굴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네트워크의 해시레이트가 매우 낮아서 가정용 CPU로도 쉽게 채굴할 수 있었고, 블록보상도 지금처럼 3.125 BTC가 아니라 무려 50 BTC였습니다. 사토시는 이 상황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전 인류를 위한 궁극의 돈을 만들기 위해선 단 한 점 도덕성의 논란조차 없는 시작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9년 1월 8일에 서두에 언급한 사이퍼펑크 커뮤니티 Metzdowd에 소스코드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첫번째 블록이 채굴됩니다. 즉, 비트코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채굴된 블록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토시는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던 커뮤니티에 소스코드를 공개했고, 첫 블록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 생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사토시는 극 초창기라는 이 유리한 상황을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블록을 채굴하려 하진 않았을까요?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은 약 10분에 1개의 블록을 생성하지만, 사토시가 존재했던 시간대(블록 2000~16000)의 블록들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10분에 약 0.6블록이 채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채굴자들이 꾸준히 들어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쉬엄쉬엄 채굴하면서 배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채굴자들이 많이 들어오는 시점인 2010년 중순 이후로 그는 더이상 채굴을 하지 않았습니다.(참고) 이처럼 사토시는 공정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반면 알트코인들은 어떠합니까? 이들은 어마어마한 물량을 사전채굴하거나 임의로 발행합니다. 그리고 이 물량을 갖고 ICO를 하거나, VC 등을 통해 투자부터 받고 시작하여 미등록 증권으로 시작하는 길을 택합니다. 이처럼 내부자들을 지닌 채 출범하는 코인들이 하이프가 끝나면 0으로 수렴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탈중앙화를 빙자하며 비트코인의 왕좌를 찬탈하려하지만, 실상은 신용화폐와 다를 바 없이 불공정하고 부도덕하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은 탄생 이후 라슬로 한예즈가 피자를 사먹기까지 1년 이상 가격을 갖지 못했으며, 이처럼 경제적 유인이 없는 긴 기간 동안에도 초기 채굴자들은 탈중앙화된 돈을 위해 기꺼이 네트워크에 기여해왔습니다. 알트코인들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코인은 돈이 된다"는 점이 확실하게 증명된 뒤에 나왔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끝내자"는 정신에 공감하는 참여자들이 커뮤니티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비트코인과는 그 철학적 저의에서부터 완벽하게 결을 달리합니다.
비트코인은 단지 암호화폐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참고: - 비트코인의 공정한 출범 (원죄없는 잉태) - @atomicBTC, "사토시가 #Bitcoin 을 사전채굴(프리마이닝) 했다?" - 제네시스 블록(mempool.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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